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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y 1, 2013


 

"나는 언제나 과학자의 신장 측정기와 어릿광대의 도취 사이에 있을 것이다.

결코 만날 수 없는 둘 사이에 남아 있으려면 대담해야 한다."

 
two thousand thirteen
 
하나. 넘나들기 그곳을 또 이곳을
 
둘. 지치지 않기 그 곳에서, 그리고 이 곳에서.
 
셋. 기억하기 내가 인정했던 가치들을
 
넷. 사랑하기 나를.. 그리고 너를.

 

Monday, May 25, 2009

4:55







 나의 마음속은,


위로를할수없는나의머릿속을위로라고받아줄수도있는게요?
이거참,살아가는하루하루에빚만지고가오.

If













하물며,
설사 너와 내가 각기 다른 미래를 가진다해도
먼 훗날 그런 너와내가 마주했을 때
비겁했음을, 용기없었음을, 탓함 없이,
말없이, 그 물위의 절로 데려가주리라.



Sunday, May 17, 2009

mont blanc



내가 알고 있는건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가야하는 그 순간에
내가 널 잠시, 떠올릴꺼라는 거다.

far away



누군가와의 안타까운 존재의 거리감은
내 생각 만치로 좁힐 수 없듯이.

내 생각 만치로 넓힐 수도 없는 것이더라.

deal



우리는 어려운 거래를 한다.

사랑하되 욕심을 내선 안돼고,
그리워하되 미련을 남겨선 안돼고,
추억을 만들되 그것을 기려선 안됀다.

너를 보살피되 관여해서는 안돼고,
관대하되 내버려두어선 안돼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되 집착해선 안됀다.

거리를 유지하되 사랑하지 않아선 안됀다.

Tuesday, August 12, 2008

st


스믈 네살,

참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이라 불리는 것이

성숙할 수, 똑똑할 수도 있는 것이냐고

되물어 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변한건 하나도 없다.



쉼없이 살아가면 그뿐

Tuesday, August 5, 2008

defeatism


어떤 문제해결에 있어서 원천의 에너지라 믿으며 나를 견뎌내게 했던 무엇이
모두다 나의 공상 혹은 극적이기 까지한 보호본능이 만들어낸
하나의 fictional character 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분노와 서러움, 외로움에 잠을 들 수가 없던 밤
끔찍한 기억,
구질구질한 나의 자아에 대한 애증,
정신적 비대칭, 비논리, 비합리,
지독하게 error를 내던 나의 인식의 부정확성,
그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
nihilism.
칸칸이 짜여져 있는 서랍에 들어가고 싶던 날들,
다만 하나의 볼트나 너트처럼 어느 인식능력도 갖고 싶지 않던 날들,
견뎌낸다는 것과 치유된다는 것은 way far 한 문제다.

distortion

언어는 왜곡되고,
갈라지고,
때때로 부서진다.
무거운 짐과 긴장밑에서.
-T. S. Eliot

Saturday, August 2, 2008

philosophers'

p h i l o + s o p h e r
[l o v e + w i s d o m]
지혜를 사랑하는 자.

Sunday, July 13, 2008

chronic remorse


심리학적으로 볼때 피해자와 가해자는 명확히 구분되며 그들의 발생은 외려 본능적이다. 그것들은 정적이며 어떤식으로도 가변성을 가지기란 쉽지않다.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감수하는 역할은 결국은 그 관계를 유지하는 원천의 에너지로서 존재한다. 그 종속관계에서의 변수는 극히 한정적이다.


그러니 기대하지 말자.


처음부터 알고있지 않았는가.



Friday, June 27, 2008

Hitherto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끊임 없이 나의 선택들을 더욱 더 정당히 만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연약한자의 합리화든, 어떤 예측치 못할 미래의 정당방어든, 나는 나의 삶에 있어서의 나의 모든 선택들에 관하여 나 자신이 끊임없이 탐구하고 누구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의 나의 첫번째 원칙이다.

principle #1.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visual과 그 모든 image 들의 의사소통에 관하여 회의적이게 된 것은, 어쩌면 내가 더욱 더 직선적이 더욱더 세밀하고 명확한 의사소통의 방식을 찾고 있을지 때문일지 모른다. 나에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고, 정확해야 하며, 오해가 없어야 한다. image의 중의적이고 상징적이며 비유적인 형식적인 특징으로 볼때 나에게는 그 것의 vague 함이 일단은 나에게 적합한 매체가 될 수 없다고 결정내렸다. image는 인간의 언어와는 달리 통역이 필요없어 단지 그 사람의 기억속에 먼저 인식되어져 정의 내려진 어떤 것과 상응하여 의사소통을 한다하여 그 것이 효율적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어떤 perspective 도 전달자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전제이다, 앞서 말했듯이 image는 비유와 상징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든 창조물은 오해받는다.

principle #2. 모든 창조물을 오해받는다.